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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평신도를 위한 신학강좌-1.입문:신학과 신앙] ⑤신학과 교회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다

신학이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돈독해야 할 ‘신학과 교회’의 관계가 이렇게 소원해졌으니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신학과 교회’에 대한 두 가지 오해가 있다. 하나는 일반 신도들이 가지는 오해이고, 다른 하나는 목회자들이 가지는 오해이다. 그 오해가 어떤 것인지를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두 가지 오해

독자들은 ‘목회자가 너무 신학적이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평신도 사이에서 자주하는 이야기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는 ‘목회자가 신학공부를 많이 하면 설교가 잠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신학공부 좀 했다고 설교시간에 현학적인 말로 일관하는 목회자에 대한 경종의 이야기다.

‘목회자의 신학공부’에 대해 비판하는 신도들의 마음을 짐작하지만 옳은 말은 아니다. 신학이 교회 발전을 가로막거나, 설교를 졸리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 현상은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을 제대로 하지 않은 그 목회자의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신학을 경시하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여러분은 신학 없이 소리만 지르는 설교가 좋나요? 혹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당신은 내용 없는 설교에 지치지 않았나요? 그러니 목회자에게 신학공부는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 것을 신학 탓으로 돌린다면 ‘신학’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신학’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다른 오해는 ‘평신도가 신학공부를 하면 교회가 피곤해진다’는 생각이다. 이 말은 주로 목회자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은 평신도 중에 신학공부를 한 사람들이 목회자의 말에 부정적으로 토를 달거나, 교회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목회자는 평신도가 신학공부를 하거나 신학서적을 읽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 자체가 이런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평신도가 ‘신학’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면 아마 신학공부를 잘못한 그 평신도의 인격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회자는 평신도가 신학 공부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다면 그 평신도는 목회자의 든든한 동역자가 될 것이고, 교회를 위한 훌륭한 영적 후원자가 될 것이다. 평신도가 변하지 않고는 한국교회가 변할 수 없지 않은가. 목회자건, 평신도건 도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존중과 긴장

이제 ‘신학과 교회’에 대한 오해를 풀었으니 바람직한 관계를 보자. 신학과 교회의 관계는 이중적이다. ‘존중과 긴장’이라는 두 측면이 함께 고려될 때 신학과 교회는 건전한 관계가 된다. 그러면 두 가지 측면을 보자.

첫째, 신학은 ‘교회의 신학’이고 ‘교회를 위한 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교회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다. 신학이 교회와 분리되면 추상적이 되고 사변화된다. 신학은 교회에서 선포되고 행해지는 신앙을 선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설교를 위한 신학적 토대를 마련하고, 교회가 당면한 시대적 어려움에 답변을 제공해야 한다.

신학은 개인의 지적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이건 평신도이건 자신의 신학공부가 교회공동체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인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신학은 단순히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작업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신학이 교회와 분리될 때 신학은 교회로부터 외면당한다. 신학 공부를 했다고 해서 가지게 되는 잘못된 비판의식이나 우월의식은 공동체를 망친다. 신학은 교회를 존중해야 한다. 신학은 언제나 교회의 학문이다.

둘째, 신학은 ‘현실 교회’에 종속되지 않는다. 현실의 교회는 아직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신학은 현실교회가 역사와 사회라는 더 큰 범주 안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이때 신학은 교회와 긴장을 가진다.

현실의 교회는 언제나 자신을 절대화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대부분 교회는 자신의 교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교회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충고는 듣기 싫어한다. 만약 어떤 신학자가 교회 성장에 열심인 목회자나 신자에게 ‘교회 성장’의 의미를 질문한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 교회가 열심히 진행하는 ‘성장’이 무엇을 추구하는 성장인가?’ 그 목회자와 신자는 이런 질문 자체를 싫어할 것이다. 혹은 어떤 신학자가 교회의 방향성에 대해 질문을 한다고 치자. ‘당신이 속한 교회는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 상당수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당황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인은 ‘자신의 교회’에 갇혀 있기 때문에 좀 더 넓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교회를 평가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상실할 때 언제나 역사적 과오에 빠졌다. 히틀러 당시의 독일교회가 그랬고, 군사독재 시절 한국교회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 오늘도 한국교회는 사회에서 바른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비판 앞에 서 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공룡’과 같은 모양이다. 덩치는 크지만 머리는 작은 공룡이 갈 방향을 몰라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두리번거리는 모양을 상상해 보라. 그런데 이제 그 ‘덩치’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신학은 교회에 대해 역사책임적 과제를 상기시킨다. 또한 역사 안에서 바른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교회가 자신 안에 매몰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교회와 ‘긴장’을 유지한다.

오늘 강좌에서 신학과 교회가 가지는 두 측면을 보았다. 신학은 ‘교회의 학문’으로 언제나 교회를 존중한다. 동시에 신학은 교회의 방향에 대해 더 큰 시각으로 성찰하도록 한다. 신학과 교회는 존중과 긴장 속에서 건강한 관계를 갖는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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