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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2. 성경·진리의 기준] ③ 성경 인식의 주체
성경은 ‘말씀’이 주체가 돼 인간에게 임하는 것

누가 성경을 인식하는가? 내가 성경을 읽을 때, 인식의 주체는 누구인가? 설교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인식하는 것은 ‘나’인가? 어려운 질문을 했다. 그러나 ‘성경’과 연관해서 반드시 답변돼야 할 질문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정하더라도, 성경의 권위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성경인식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만약 인간이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인식할 수 있다면, 결국 성경은 인간의 판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성경인식의 주체, 인간?

현대에 해석학은 신학, 역사, 철학, 문학 등 여러 학문의 분야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해석학은 경전, 고대문헌, 철학, 역사적 자료, 시, 기호와 같은 텍스트를 해석하는 기술이다. 해석학에서 텍스트를 해석하는 주체는 당연히 ‘인간’이다. 인간이 문헌을 읽고 해석한다. 즉 자료를 읽고 인식하는 주체는 ‘나’이다. 내가 인식하는 ‘주체’(subject)이고, 자료는 나에게 인식의 ‘대상’(object)이 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일반 해석학의 방법을 성경해석에 적용했다. 일반 해석학의 방법을 성경에 적용해도 되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일반 해석학을 적용할 때, 인간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주체가 되고, 성경은 인간에게 인식되는 대상이 된다. 인간이 어떤 해석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성경의 의미는 달라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한다.

오늘날 이런 구조는 설교나 성경읽기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현대에는 인간이 설교와 성경읽기의 주체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자리하고 있다. 설교에서도 인간이 주체가 되고, 성경말씀이 인식의 대상이 되는 구조가 동일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목사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설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한다. 설교에서 목사는 선포의 주체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의 대상이 되어 신도들에게 전해진다.

그러다보니 목회자는 자신이 선포의 주체라는 착각에 빠진다. 자신이 선포한 설교에 대한 반응이 좋으면, 우쭐해 하는 목회자도 있다. 목회자 중에 스스로 ‘큰 종’이나 ‘불의 종’이라고 말하면서 교만한 자도 있다. 목회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말씀이 놀라운 역사를 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자신이 말씀 선포의 주체라고 생각한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을 평가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말씀을 대상으로서 인식한다. 말씀을 들으며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비판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설교를 듣고, 설교가 감동이 되면 목회자에게 감사를 전한다. 성경을 읽는 것도 동일한 구조이다. 인간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성경을 읽는다. 인간은 성경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성경의 말씀은 판단을 받는 대상이 된다. 역시 두려운 일이다.

선포의 주체가 인간이 되고, 인식의 주체가 인간이 될 때, 성경과 선포된 말씀은 권위를 상실한다. 인간은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이 주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침묵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인식의 주체, 하나님?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기에 해석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떤 해석방법을 따를 것인지에 있다. 20세기가 되면서 성경을 일반 텍스트와 동일한 기준으로 해석해도 되는지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체가 되는 해석학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신학자 바르트(K. Barth)의 공헌이 컸다. 바르트는 성경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연구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또 어떻게 구원하는지를 계시한 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말씀한 것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이 주체로서 말씀하시면 인간은 단지 들어야 한다.

인간이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오면 죄 된 인간은 ‘위기’를 느끼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전적인 무능력을 알게 될 뿐이다. 인간이 말씀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인간을 말씀 앞에 세운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인간이 말씀을 선포하고, 인간이 말씀을 듣고, 인간이 성경을 읽는 형태를 가진다. 그러나 인간이 주체로 있는 동안 성경은 아직 인간의 언어일 뿐이고, 그 설교는 인간의 말일 뿐이다. 인간의 말로 있는 동안, 그 말씀은 구원의 능력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통해 선포되지만,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인간에게 임한다. 하나님이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살아 움직여 나에게 임한다. 말씀이 주체인 것이다. 인간이 ‘예수님을’(object)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선포 속에서 ‘예수님이’(subject) 나에게 임한다. 이때 말씀은 구원의 사건이 된다. ‘인간이’ 구원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모양을 가진다. 내가 성경을 읽을 때, 내가 주체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말씀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주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선포하는 목회자든 듣는 신자든,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학자나 목회자의 지성에 종속되지 않는다. 만약 목회자의 선포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면, 만약 신자들이 성경을 읽으며 놀라운 체험을 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말씀이 주체로서 일으키는 사건이다.

계시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말씀의 능력이다. 성경이 읽혀지고 구원사건이 되는 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말씀 스스로가 가지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인식되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이다. 말씀이 우리에게 인식된다면 그것은 오로지 은혜의 사건이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교수>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gCode=0000&sCode=0000&arcid=0006922401&code=2311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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