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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대강절의 의미
눅1:34-38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로 우리들에게는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대강(?)대강보내는 절기로 정착이 되어가는 것이 안타가울 따름입니다.
대강절을 누가복음1장을 토대로 그 의미를 살펴보면
1. 태어남의 기쁨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존귀함을 알지못하면 대강절의 의미는 없습니다.
  내 이웃, 우리의 자연, 그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것이 없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서 존귀합니다. 내가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남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한 생명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이세상은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신 곳입니다. 우리가 마구 처리하고 버릴 대상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난다는 것은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 납니다. 불가능성들로 가득찬 세상일지라도 말입니다. 이땅의 구원의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바꾼 한 생명이 "예수"입니다. 그 예수를 우리가 기다리면서 우리의 생명을 함부로 다룬다면 대강절은 없는것입니다.
  미군의 장갑차에 무참히 짖밟힌 두 여중생의 생명을 외면한다면 확언하건데 한국교회에서의 대강절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대강절은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2. 성령으로만 가능한 기적의 절기입니다.
   15절(세례요한의 출생예고), 35절(마리아의 수태고지), 41절(엘리사벳의 노래), 67절(사가랴의 예언)에보면 대강절에 일어난 모든일에는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란 도대체 대강절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백성들의 희망의 근거를 하나님에게서만 찾겠다는 흔들림없는 믿음입니다. 누가복음1장을 잘 읽어 보십시오. 성령의 충만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희망을 "자기 백성을 돌아 보시는 그분에게" 두는 것 입니다.

대강절의 기다림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생명의 존귀함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지 않고는 백성의 희망이 없다. 즉 희망의 근거를 예수에게만 둘때 대강절인 것입니다.

우리의 땅이, 우리의 역사가 마리아의 노래(46-55절)와 같이 되기를 희망하십니까?  우리도 이노래를 부르며 모든 의의 근거를 하나님께, 나실 예수에게 둡니까?  마리아가 기다린면서 불렀던 노래, 사가랴가 불렀던 노래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속에 묻힌 생명들의 탄식소리가 하늘에 사무칠 것입니다. "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돌아 보셨다"를 외치며 이땅의 어둠과 죽음을 몰아 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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