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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광복절은 아직도 진행중
성경적 의미의 광복절

다시 64주년 광복절(光復節)이다. 우리가 기리는 광복절인 1945년 8월 15일은 일본 제국주의적 식민통치라는 '어둠'으로부터 '빛'을 찾은 날이다. 이사야 9:1~7과 이사야 11:1~9은 성경적 의미의 '광복(光復)'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광복은 앗수르 제국에게 병탄된 이스라엘의 영토인 스불론과 납달리, 이방의 갈릴리에 이상 왕이 나타나 해방과 자유를 안겨주고 백성들의 어깨 위에 지워진 무거운 쇠 멍에를 분쇄하는 날이다(9:1-4). 광복은 의롭고 자애로운 메시아의 통치로 가난한 자들의 아우성이 그치는 날이며, 악한 자들이 순화되고, 극단적인 탐욕을 추구하는 지배 엘리트들이 양심을 되찾는 날이다(11:4-9). 어린 양을 잡아먹는 육식성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 초식동물이 되기로 결단하는 날이다(11:6-7).

성경적 광복절은 모든 압제와 불의, 착취와 아우성이 사라져 '파괴'와 '살상', '폭력'과 '비국민적 대우와 차별'이 사라지는 날이다. 앗수르는 주전 10세기부터 7세기까지 메소포타미아와 근동 일대를 잔악하게 병탄하고 압제한 제국으로서, 피정복민을 집단 이주시키는가 하면 피정복 국가의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철저하게 수탈했다. 이사야 11장에서 예언자는 이런 앗수르의 제국주의적 압제와 착취가 꺾인 그곳이 빛을 찾은 새 이스라엘 공동체가 될 미래를 노래했다. 그는 왕과 고급 관리들이 권력의 기득권 대신 가난한 땅의 백성들의 처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살피며(사32:1-2), 백성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만한 친척이 되어주는 우애 충만한 공동체가 세워지는 사건을 광복이라고 본다.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1945년 8월 15일을 국경일로 기리는 까닭은, 착취와 압제, 수탈과 불의가 사라지고 형제자매적 우애와 상호부조적 인애가 가득 찬 계약 공동체를 세울 가능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가 종식되어야 했던 이유는 그것이 수탈과 억압, 인권 유린과 주체성 박탈, 불의와 착취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적 지배 체제는 그것이 일본 사람들의 체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반(反) 하나님적인 억압과 수탈, 불의와 폭력의 지배 질서이기 때문에 배척해야 할 악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광복절은 어느 과거 시점에 일어났던 일과성 사건이 아니라 바로 현 시점에서도 추구되어야 할 현재적 과업이기도 하다.

8·15 해방절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명박 정부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세 가지 점에서 광복절의 위상을 훼손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1945년 8·15 해방보다 1948년 8·15 남한 단정 수립일을 훨씬 더 중요한 국경일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명시하는 헌법 조문에도 불구하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일을 감히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며, 일제 치하에서 항일 해방 운동에 생명을 바친 독립 선열들의 희생을 배반하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정부' 이래로 두드러진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로 통치하면서 중산층 몰락과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할 정책과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올 입법들을 강행하는 한편, 생존권을 부르짖는 자국민을 단지 법치주의라는 미명 아래 잔혹하게 다루고 있다. 총칼의 힘으로 조선 민중을 강압적으로 지배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무단통치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불행한 건 이명박 정부의 극단적인 그러면서도 실용적이라고 주장하는 남북 대결 정책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선동적이고 과장적인 슬로건을 내걸며 지난 10년간 우리 겨레 안에서 싹튼 화해 분위기와 남북 민간 교류 역량, 인도적 지원 기조를 약화시켰다. 이념보다는 실용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기도 하고 남북 간의 전면적 대화를 주창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남북 겨레 사이에 자라기 시작한 화해 역량을 파탄내고 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이명박 정부만의 책임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 비롯된 것도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 아래서 더욱 위세를 떨치고 있다. 광복절은 단지 압제자의 멍에가 끊어지는 데서 성립되지 않는다. 일제 지배로부터의 참다운 해방은 우리 겨레가 생물학적으로 일본 사람들의 지배를 벗어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적 가치로부터 해방되고 메시아적 형제자매 우애 공동체를 창조하는 데 있다. 그것은 의롭고 자애로운 '섬기는' 지도력의 출현으로 심화되고 육화된다.

이사야 9장이 말한 메시아 공동체는 바로, 갈릴리에서 오신 메시아 나사렛 예수가 갈릴리 농민들 한복판에서 이루려고 했던 형제 우애 공동체였다. 나사렛 예수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께 소속되고, 하나님께 책임지는 자율적인 시민으로 거듭 태어나도록 촉구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자매가 되어주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셨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우리 겨레가 열망하는 이런 메시아적 광복절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건국절 논란에 가려진 광복절

첫째, 이명박 정부는 1945년 8월 15일 광복 자체가 민족 국가를 건설할 항일 투쟁 역량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승전 결과이기 때문에 전 민족적 경축을 받을 사건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대신 이명박 정부는 광복절보다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이 훨씬 더 중요한 국경일이라고 선언한다. 연합군의 대표인 미군의 승리와 이승만 등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정치적 예지 및 국제 정세에 대한 그들의 능동적 대처로 남한에 세워진 자유민주주의적 대한민국 '건국'이 더욱 경축할 일이라는 것이다. 건국에 참여한 공로, 그리고 북한 공산 정권을 분쇄하는 데 앞장 선 반공 투쟁의 경력이 친일과 부일의 죄악을 능히 대속(代贖)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친일과 부일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능력만 있으면 중용하겠다는 이승만의 실용 노선을 답습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살아왔는가보다는 현재 당면한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법치주의를 외치는 이 정부는 장관급 고위 공무원이나 검찰총장 등 공직 후보로 천거된 모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불법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이명박 정부는 선과 악, 정과 사, 준법과 불법의 가치 차이보다 능력과 무능력의 차이가 더 중요한 듯하다.

물론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우리 겨레의 해방 투쟁 역량만을 통해 이루어낸 역사적 쾌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선열들의 희생과 애족적 열정을 훼손하는 빙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해방 조선을 구성할 시점에 우리 겨레가 동원한 독립과 해방운동 역량이 미흡했을지라도 우리 겨레는 한결같이 항일 독립 투쟁을 벌여왔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국제적 양심과 인도주의적 문명 질서에 호소했다. 이것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벌어진 우리 겨레의 독립운동사의 궤적들이 증시(證示)한다.

한일 병탄 이후 일제에 대한 조선 민중의 항거는 한반도와 해외 각지에서 세세연년 계속되었고 일제가 강요한 압제와 착취의 멍에를 벗어버리려는 조선 민중들의 의기와 함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 조선 민중들과 특히 청년 학생들의 독립운동과 항일 의거 경험이 남한의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민주화 혁명의 원천 자산이었다. 4·19와 5·18 민중 항쟁, 1987년 6·10 시민 항쟁 등은 일제에 저항했던 민중적·민족적 역량이 비축되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초기 주체 세력들 또한 항일 투쟁의 역사에 참여한 자들로 인정되고 있다. 아무리 우익 역사가라도 지금은 김일성의 항일 투쟁 경력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북한이 1980년대 이후 주체사상으로 국제적 고립화, 전체주의적 이념 독재 국가의 길을 걸으며 민족사적 정통성을 크게 이탈하긴 했지만, 그들도 항일 투쟁의 역사를 가진 집단이었다. 이로 보건데 우리 겨레의 광복이 순전히 국제정치적 질서 재편의 부산물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일제에 항거한 40여 년의 독립운동사, 나라를 새롭게 세워보려고 했던 독립운동 투신 선열들의 숭고한 얼을 충분히 인정해주지 않는다. 송병준을 비롯한 친일파 후손들의 땅 지키기 소송 사건과 독립운동가 후예들의 가난한 살림살이는 우리 시대가 아직도 1945년의 시계(視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준다.

적대적 분단 체제로 인해 소멸된 8·15 광복의 감격

둘째, 이명박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에 사용할 수 있는 주도적 기회들을 스스로 상실하고 남북 대결 분위기를 격화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 아래 남북 관계 악화는 단순히 이명박 정부 자체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동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북 우월감과 과잉 자신감으로 무장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노선은 지난 10년간 축적한 남북 화해 및 신뢰 자산의 폐기로 이어졌고 급기야 북한과의 대화 채널의 전면 중단 사태를 초래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 개성 경협 단지의 폐쇄 위기로 치닫는 작금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 내내 큰 부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특단의 주도적 남북 화해 정책으로 선회 없이 이 정부가 민족 화해사에서 의미 있는 치적을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이명박 정부의 실책에 북한 정권은 완매한 강성 대국화 정책과 자폐적인 핵무기 벼랑 외교로 응답했다. 자국민의 대량 아사를 방치한 채 국제 사회의 유기적 협조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북한 정권의 자폐적 확신, 국민의 대량 국경 탈출을 초래한 경제난, 가혹한 사상 통제와 거주 이전의 자유 제한 등 인간의 기본 인권을 광범위하게 유린하는 북한 정권이 한 나라를 경영하기에는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현재 북한은 해방 이전, 광복 이전의 일제 수탈 체제보다 나을 것이 없는 전대미문의 이념 독재, 전체주의 국가가 되어 버렸다. 북한 정권은 8·15 해방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남한 현대사는 일제에 대한 저항만큼이나 치열하게 민주주의적 가치, 인권의 가치를 신장하기 위하여 분투한 역사다. 비록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세운 정부였으나, 남한은 이제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나라로 공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남한 또한 이념적 경직에 빠져 북한 동포를 거룩하게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남한은 빈사 지경에 이른 북한 동포를 아우르며 새로운 조국을 건설할 사상 및 정치·경제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기대처럼 이명박 정부의 북한 봉쇄 정책과 대북 압박 정책이 북한 붕괴를 초래하는 데 기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은 북한 정변 시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중국 해방군의 품으로 쏠리게 만들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명박식 실용주의 남북 적대 정책이 북한을 항복시켜 흡수 통일하는 길을 열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북한 동포의 마음 영토를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실지(失地)로 만들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8·15 광복절은 분단 적대 시대를 극복해야 참 광복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와 내부 식민지화로 무효화되는 8·15 광복

셋째, 남한의 가속되는 양극화와 이와 맞물린 민주주의적 가치 퇴조는 남한 사회를 제국주의적 '지배층'과 수탈과 착취를 당하는 '민중'으로 양분할 기세다. 이명박 정부의 통치 행태와 입법 기획들은 한 세기 동안 일궈온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대다수 언론학자가 반대한 미디어법을 탈법과 편법으로 무리하게 통과시켰고, 용산 철거민 소개(疏開) 작전을 벌이다가 발생한 희생자들의 죽음을 모른 체하고 사죄도 위로도 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가적인 정책은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억압하는 잔혹한 정책을 장려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리영희 같은 지식인들은 이명박 정부가 파시즘의 초기 단계로 진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피력한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우리 겨레에게 고통이 된 이유는 일제가 식민 통치에 협조하는 친일·부일파를 제외한 대다수 조선 민중을 비(非)국민으로 대우하고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 정부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은 특정 지역 국가의 국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인간, 특히 자기를 지킬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압제하는 권력자나 국가를 심판하신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심화된 사회 양극화는 비국민을 양산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 나라의 공동체가 국민과 비국민(내부 난민)으로 분열되거나 기층 민중이 내부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할 때, 그러한 통치는 일본 제국주의적 통치와 다름이 없다.

강준만은 현재 대한민국을 수도권에 의한 지방 식민지화 정책 위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극단적 신자유주의 체제로 사회 양극화가 가속되면 일방적으로 수탈당하는 8·15 해방 이전의 조선 민중급 비국민이 이 땅을 가득 채울 것이다. 가령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극단주의적 자유 무역 논리가 한국의 농촌 공동체를 결정적으로 해체함으로써 사실상 농민의 식민지 백성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고 본다. WTO에 반대하는 전 세계 농민의 연대 조직인 '비아캄페시아'(농민의 길)는, 농민이 모든 자유무역 논리의 폭력으로 내부 식민지 백성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선언한다.

박노자는 '민중 본위의 통일은 가능한가 - 함석헌의 통일론으로 본 통일 과정의 현실'(<녹색평론> 106호, 2009년 5-6월호)에서 개성 공단의 운영 현황과 탈북민의 남한 사회 부적응 현상을 들어, 남북한 통일이 일어났을 경우에 남한에 의한 북한 주민의 내부 식민지화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개성 공단 등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과 자연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 남한 자본의 투자가 북한 노동력을 흡수하여 경제권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남한에 합병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면, 북한 동포는 남한의 식민지 백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그런 가능성의 단초를 남한에 정착해 사는 탈북민의 처지에서 찾는다.

1만 명이 넘는 탈북자 중 남한 사회의 편견 때문에 심적 고통을 느낀 탈북자들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06년의 탈북자를 상대로 벌인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1.5%가 남한인들의 차별 때문에 남한사회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변하였다. 심지어 54.6%가 "처벌의 위험이 없으면 북한에 돌아갈 생각도 해 본다"는 답을 선택했다고 한다(장용훈, "국내 정착 탈북자 절반 南서 차별받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7월 17일). 박노자는 오늘날 남북한의 국력, 개발 수준의 차이, 그리고 남북한 사이의 교류의 추이를 감안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준비 없는' 남북한의 통합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남한 사회에 의한 이와 같은 대접을 북한의 기층 민중 대다수가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대북 봉쇄를 통해 마침내 흡수 통일 혹은 그에 유사한 남북 통합을 성취한다고 하더라도 북한 주민의 하층민화를 막지 못한다면 참다운 의미의 통일이나 광복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불평등한 흡수 통일은 아직도 식민지 백성으로 대우받는다고 느끼는 비국민들을 양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1945년 8월의 광복의 의미를 무효화하는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한반도의 광복 운동의 대상이었던 일본 제국주의적 식민 지배를 방불케 하는 내부 식민지화가 이처럼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면 그것은 참다운 광복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연장이다. 사회적 양극화를 통해 국민의 일부를 비국민화하거나 식민지 피지배 백성으로 억압하고 학대한다면 그것은 광복절의 무효화다.

참다운 광복은 메시아 공동체의 건설에서

이런 점에서 볼 때, 광복절의 참된 완성은 이사야 9장과 11장이 말하는 메시아 공동체 건설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 보면 일제의 식민 지배를 초래했던 것은 조선 지배 계층에 의한 민중의 수탈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뼈아픈 회개와 청산을 통해서만이 참다운 광복에 이를 수 있다. 회개는 여기서 민중 수탈 체제의 청산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모세의 영도력으로 이집트 파라오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형제 우애적 계약 공동체로 거듭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입적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입적된다는 것은 어떤 제왕이나 지배자의 신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대우 받는 언약 백성이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이스라엘에는 어떤 군림하는 압제자나 수탈하는 지배 권력자는 허용될 수 없었다. 만일 파라오를 방불케 하는 압제자가 왕의 이름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을 무효화하는 신성모독적 행동으로 간주되며 하나님의 또 다른 출애굽 해방 운동을 촉발시킨다.

성경은 출애굽 구원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도 이집트의 파라오 같은 압제자가 출현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경고한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북이스라엘 지파들을 강제 노동과 가렴주구로 학대하자,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을 통해 또 다시 출애굽을 일으켜 고통 받는 백성을 해방시켜주셨다(왕상 12장).

이처럼 성경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국가나 왕의 신민이기 이전에 하나님께 소속된, 하나님께 책임지는, 하나님과의 언약에 매인, 그리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의 백성(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그 백성)은 어떤 인간적 독재자나 지배 계급에게 일방적으로 수탈당하거나 지배당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왕들의 정책이야말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순종 여부를 검증하는 시금석이 된다고 보았다. 지주들과 고관들, 왕과 귀족들의 압제와 학대에 의해 가난케 된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감찰과 보호를 받는 백성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정권이나 왕조의 모든 멸망은 그 공동체 안의 가난한 자들을 임계점 너머까지 극단으로 억압하고 수탈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민족사의 누적된 중심 죄악의 회개를 촉구했던 예언자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지배 권력자들은 이스라엘 자유 농민들을 임계점 너머까지 압제하고 노예화하다가 멸망당했다. 북이스라엘 왕국(BC 721년)과 남유다 왕국(BC 586년)의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어났다고 하는 성경의 주장은 당대의 상황에서는 결코 자명한 진리가 아니었다. 애국적 열정을 가진 당대의 왕들과 정치가들은 국제 정세상 절대적인 힘의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고 믿었다. 마치 범람하는 홍수에 침수되는 것처럼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난 대제국의 힘이 남서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자연적인 사태였다는 것이다.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정복하고 약탈하고 멸망시키는 것은 대자연의 법칙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였다.

이런 대다수의 의견과는 달리 북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의 멸망은 지배층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믿고 주장했던 예언자들은 당대에는 박해받는 소수파였다. 주전 8세기의 위대한 예언자들이었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는 지배계급과 권력층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 제국의 침략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는데, 이들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이유로, 또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 안에 진작되는 대앗수르 항전 의지를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한결같이 매국노로 매도되었다. 약 100년 뒤의 예언자들인 예레미야와 에스겔도 거의 동일한 예언으로 유다 왕국의 멸망을 해석했다. 신흥 바벨론 제국의 유다 침략은 유다 왕국의 지배 권력층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집행 차원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유다 왕국의 권력 엘리트들은 내부의 민중에게 이미 전쟁을 선포한 외국 침략군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예언자들은 제국주의적 지배 질서나 헤게모니를 신의 정당한 지배를 대행하는 질서라고 보지 않았지만, 당대에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메소포타미아의 제국들에게 침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실린 심판이었다고 믿었다. 이들의 의견은 유다 왕국이 멸망당한 뒤, 더 이상 유다 왕국의 부흥 가능성이 사라진 다음에야 정통파 의견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의 의견을 박해할 권력 집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벨론 귀환 포로 공동체의 광복 운동

바벨론 포로살이가 끝난 후에 다시 고토 이스라엘로 돌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계승하려는 부흥 운동이 있었다. 역대기서와 에스라-느헤미야서가 바로 이 시대를 다룬다. 그 시기에 일어난 가장 큰 논쟁은 누가 과연 여호수아 시대부터 시드기야 왕 시대까지 약 600년간 지속된 이스라엘 역사의 정통 계승자인가 하는 것이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앗수르로 유배되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으로 불리며, 바벨론 유배 이후의 이스라엘 영토를 점유한 주도 세력이었다. 이들은 옛 북이스라엘 영토를 장악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일대까지 영향을 확장했고, 주전 6세기에는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 바벨론으로 유배당하지 않고 땅에 남아 있었던 유다 백성들과 견고한 동맹을 이루어, 예루살렘을 국제 상거래 교역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대부분 왕족과 귀족이었던 바벨론 귀환 포로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 및 유대 전역과 옛 북 왕국의 영토는 땅에 남아 있었던 남북 왕국의 비유배파 토착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의로운 백성이며 이스라엘 역사의 정통 계승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 비유배파는 실상 하나님의 버려두시는 심판을 받은 자들이었다(렘 25장. 두 광주리의 무화과 비유). 앗수르의 병탄 지역이었던 북이스라엘 왕국의 비유배파에서는 주전 721년부터 주전 586년까지 어떤 예언자도 일어나지 않았다. 북 왕국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스라엘의 합법적 계승자라고 간주할 수 있는 어떤 표적도 없었다. 예언자 집단의 존재 유무가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시금석이었는데, 북이스라엘 왕국 지역에는 왕국의 멸망 후 어떤 예언자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유다 왕국 멸망 후 유다 왕국에 남아 있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어떤 예언자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두 집단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수행할 어떤 역할도 계시 받지 못한 유기된 집단들이었다. 그들은 땅과 재산을 차지한 주도 세력이었으나 하나님의 다가올 구속사에 어떤 분깃도 받지 못한 자들이었다(스 4장).

반면 주전 6세기 유다 멸망기에 일어난 두 위대한 예언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바벨론으로 유배된 자들, 즉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나라가 망했다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이 유배파는 자신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고 믿고 민족과 국가를 멸망시킨 죄를 청산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의 미래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에스라 9장, 느헤미야 9장, 그리고 다니엘 9장이 이들의 역사의식을 집약하고 있다. 이 세 장들은 유다 왕국의 멸망은 유다 왕국의 지배층과 지배 계급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변된 심판임을 고백하는 바벨론 포로들의 역사의식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전 538년부터 450년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고토 이스라엘로 귀환하였다. 이들이 땅에 남아 있던 자들과 이스라엘의 광복(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을 놓고 각축했던 것이다. 이 바벨론 귀환 포로들은 훨씬 소수였고 세력도 미약했으나, 신학적으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민족사의 재난이나 비극을 대자연의 법칙이나 자연 현상의 일부로 보는 무반성적인 비유배파 토착 세력들과는 달리, 귀환 포로들은 바벨론 포로살이와 유다 왕국의 멸망은 지배 계층의 민중 수탈과 착취라는 중심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 고토를 차지하고 있던 토착 세력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어떤 민족사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새로운 광복 역사를 일으키기 위한 어떤 회개도 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하여 이 귀환 포로들은 유다 왕국의 민중 수탈, 하나님의 율법 폐기, 유일신 하나님 예배 이탈 등 구체적으로 유다 왕국의 중심 세력들이 범한 죄악을 회개했다. 이런 죄악들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으며 70년의 바벨론 포로살이를 초래했다고 믿고,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옛 죄악과 결별하고 그것들을 청산하려고 했다.

이런 하나님의 원인론적 역사의식을 가진 바벨론 귀환 포로들이 추구하던 세 가지 과업은 △북 왕국에 남아있는 백성의 포용 △예루살렘을 국제 상거래 교역 도시로 만들어버린 세력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예배와 제사의 중심 도시로 재활 복구시키는 것 △유다 왕국의 멸망을 초래한 중심 죄악들에 대한 철저한 회개였다.

이스라엘 귀환 포로 공동체를 실제적으로 형성하는 데 결정적 지도력을 행사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초래한 지배 권력자들과 지주들의 죄악을 철저하게 청산하는 개혁에 착수한다(느 5장). 형제자매의 경제적 재난을 기화로 형제자매를 노예화한 유다 장로들과 귀족들을 탄핵하며, 살림살이가 거덜 난 동포들을 재활 복구시켰다. 유일신 신앙과 제의를 더럽힌 타락한 종교 권력자들을 척결하고 성전의 신성성을 회복했고,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거룩성을 함양했다. 느헤미야와 귀환 포로들은 결국 유다 왕국을 멸망으로 이끈 중심 죄악들을 회개하는 데 투신하여 과거 죄악과 결별했다. 그들은 유다 왕국 멸망과 바벨론 포로살이를 초래한 옛 죄악들을 철저히 인정하고 청산하는 절차를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하려고 한 것이다.

광복 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

여기서 우리는 아직도 잔존한 일제의 민중 수탈적 사회 질서로부터 해방 운동과 분단된 겨레의 화해와 통일 운동이 동일 궤적을 그리는 운동임을 깨닫는다. 광복 운동은 식민지화된 백성, 수탈과 압제의 희생자를 구원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박노자는 앞에서 인용한 글에서 미래에 이뤄질 남북통일 과정에서 북한 동포의 식민지 백성화가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남한에 의한 이북 지역 '내부 식민화'의 방지를 위해 무엇보다 통합 시 북한 주민에게 유리한 통일 조약 체결 등 제도적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추세대로라면 북한 평민 대다수가 '통일 조국'의 약자 층으로 편입될 것이고, 이들은 지금 남한 사회의 하층민중 수준의 삶의 질을 강요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남한 사회가 양극화의 희생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남북통일 시대의 북한 동포를 어떻게 대우할지를 결정할 것이다. 남한 사회에서 기층 민중이 내지르는 아우성과 그들의 인권을 돌보는 자애로운 메시아적 정치가 펼쳐진다면, 그것은 북한 동포들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광복절은 일방적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하층 민중에게 강한 소속감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나라를 되돌려주는 운동이다. 광복 운동은 사자처럼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소처럼 자발적으로 풀을 먹으며 어린 양처럼 연약하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뒹구는 평화 운동이다.

김회권 / 한반도평화연구원(KPI) 연구위원,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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