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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산 위의 영성, 산 아래의 영성
마가9:2-29
산위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기사가  마태17장, 누가9장에도 있다.
산위에 오르실때 예수님의 제자 3명을 데리고 오르셨다.
산위에서 변형되신 모습을 보고는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짓자는 제안을 했다.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 베드로는 '여기가 좋사오니'하면서 산위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아래로 내려오시 길 원했다.
산위의 빛난 광경과는 달리 산 아래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다.
우리는 종종 산위의 황홀경을 최고의 신비요 영성이라고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 아래로 오셔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인간 해방인 것이다. 진정한 영성은 나에게서 출발해서 산위의 신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세야! 모세야!"부르시는 하나님앞에서 부름을 받고 애굽의 현실을 하나님의 눈으로 직시하는 태도인 것이다.
바로 우리의 영성은 산 아래로 내려 갈 줄아는 영성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누가복음에 보면(9:29)"예수님께서 기도 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이렇다고 우리도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기도에 대한 심각한 오해인 것이다.
물론 산위에서의 신비로운 체험도 필요하다.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져 주실때에 가능한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신앙을 내면화 시켜서 또 다른 사이버 신앙을 추구하는 것은 영성이 아니다.
산아래로 내려와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우리 가운데 서심이 은혜이듯이 우리가 이웃의 현실에 서서 기도로 혼돈과 공허를 물리치는 영성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는 산위로 올라 갈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혼돈과 공허와 역사의 흐름이 하나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억눌림을 푸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노래하고 있다면 " 저 낮은 곳을 향하여"를 열창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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